[잡설] 과연 386세대는 불행했던가?

생각을 바꿔서 몇마디 하기로 했습니다

ellouin님의 반론은 정확하게는 초록불님의 글에 대한 것이 아니라 소위 "6.25 무용담을 늘어놓듯이" 6월 항쟁 시절의 얘기를 늘어놓으면서 현재 20대를 갈구는 몇몇 바보같은 386세대에 대한 것이라고 보는게 더 정확하지 않나 봅니다.

(특히 이렇게 무용담을 늘어놓는 부류는 사실상 거의 대부분 "침묵하는 다수"에 속했겠지만요. 진짜 활동하신 분들이 당시의 활동을 자랑하고 돌아다닌다고 생각해 본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ellouin님이 초록불님의 글을 겨냥한 것은 조금 오해가 있었던 게 아닌가 해요. 사실 요즘 10-20대는 상대적으로 30-40대보다 박탈감이 더 심하지 않나 싶어서 말이죠.

한가지 예를 들어보면 요즘에는 온라인 게임부터 엑박이니 플스니 같은 오락부터 극장, 영화, 공연 도서, 심지어는 노래방까지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났지만 막상 이걸 가장 많이 소비해줘야 할 요즘 청소년들과 20대들은 대입과 취업에 쫓겨서 제대로 즐길 시간을 갖지 못하고 있고 무엇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여가를 즐길 "여유"를 상실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

요즘 극장에는 사람들이 몰리고 있지만 막상 DVD나 블루레이 같은 매체가 전혀 시장에서 먹히지 않고 있고 CD들이 온라인 음원으로 급속하게 대체되고 있는 현실을 보면 사람들은 더 이상 문화를 즐기거나 영유하는 것이 아닌 "소비"하고 있다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즐길 시간이 없으니 가장 확실하고 싼 방법인 극장에서 아무 영화나 보거나 노래방에서  실컷 노래부르거나 PC방에서 노는 것이죠. 이건 스트레스 해소지 문화 생활은 아닙니다. 문화 생활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은 되겠지만 그 자체가 스트레스 해소와 똑같은 것은 아니죠.

80년대만 해도 우리에게는 고작 해적판 만화책과 동시상영관 정도였죠. 하지만 즐길 것이 부족했던 당시 청소년이나 20대에게는 이런 것들도 너무나 소중했었습니다. 물론 책이야 당시에도 있었고 예나 지금이나 중요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지식"이 아닌 "상품"이 된 것 같은 느낌도 적지 않게 들어요.

386세대의 낭만화된 "무용담"이나 추억을 듣거나 읽을 때마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된 삭막해지고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삶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절망하는 10-20대들이 386세대나 그 이전 세대에게 느끼는 분노는 저 아래 깊숙이 가라앉아 있을지 몰라도 결코 적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민주정권이 들어선 이후 IMF가 터지고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시대의 정치-경제적 주체는 바로 386세대인데 막상 그들에게서는 더 이상의 "무용담"은 나오고 있지 않으니 말이죠. 거기다 예전과 다름 없는 정치의식과 사회 분위기는 6월 항쟁의 무용담마저 무색하게 만들고 있죠. 386세대의 무용담이나 추억은 이제 더 이상 약발이 없는 것입니다. 삶을 즐길 여유마저 상실한 10-20대에게는 딴세상의 옛날 얘기고 현재의 그들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안되니까요. 

그러므로 당연하게도 20대를 까는 분위기에 반발하는 것입니다. 당시 운동권들의 노력과 희생을 폄하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들 덕분에 이만한 세상이 자리잡은 것이죠. 하지만 대학 내에서 투쟁을 하면서도 막상 학원 내 민주화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채 지금까지 이어졌고 오히려 지금은 학생들의 목소리와 요구는 더더욱 묻히고 있습니다.

물론 학생들의 복지나 편의를 봐주는 제도는 증진되었겠지만 진정하게 학생들을 위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경향은 줄어들었죠. 오히려 진성고처럼 입시의 미명 하에 스파르타식으로 학생을 억압하는 시대에 역행하는 학교들이 등장하고 있고 두산의 중앙대학교 인수처럼 대학들은 점차 사기업의 성격이 더욱더 두드러지고 있죠.

하지만 그러는 사이 10-20대들은 금전만능주의를 바탕으로 한 대입과 취업 경쟁의 희생자가 되어서 386세대를 비롯한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채 지금까지 견뎌야 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졸업하면서 이따위 교육제도는 후배에게 물려주지 말자는 다짐은 고작 다짐으로 끝나고 말았죠. 최소한 저는 제 후배들에게는 죄인입니다. 그렇게 느끼고 있죠. 물론 지금까지 최선을 다한 초록불님같은 분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죄스럽구요. 그래서 20대를 "까"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솔직히 386세대도 힘들었습니다. 당시 억압받는 사회분위기부터 입시 및 취업까지...
 
하지만 과연 386세대가 "불행"했을까요? 아니면 그들 스스로 불행했었다고 생각했었을지... 

최소한 초록불님 글에서는 "불행"이라는 단어가 쓰인 것을 기억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러나 제 생각에 요즘 10-20대들은 분명히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초록불님의 반론으로는 적절하지 않다고 해도 ellouin님의 글 자체는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이것이구요.
초록불님이 너무 신경쓰실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다만 제발 당시 저처럼 가만히 있었으면서 마치 당시에 뭔가를 한 것처럼 찌껄이면서 20대를 까는 사람들은 제발 자중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막상 합리적인 목소리까지 오해나 비난을 받고 있으니 말이죠.

제가 지금 20대였다고 해도 얼마나 잘 했을지 모르겠습니다.


뭐.. 좀 두서없는 글이 되버렸네요... 졸문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ㅜ.ㅜ

by dunkbear | 2008/05/15 09:54 | 생각과 잡설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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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초록불 at 2008/05/15 10:09
행과 불행은 어느 정도 마음가짐에 달린 문제라고 봐요. 저는 고등학교 다닐 때가 제일 불행하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대학 시절에는 그나마 학교 다니는 동안 성취가 있었기에 다행이지요. 하지만 그 시절의 대학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저는 그 이후의 대학을 보면서 많이 부러워했습니다. 데모로 까먹은 시간 없이 책 한 권 더 보고, 강의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도 했답니다.

교육에 대해서는 지금도 고민이 많습니다. 우리 때도 여럿 자살했거든요. 내신, 대입 때문에... 그리고 지금은 바로 내 아이들의 문제에 부딪쳐 있으니까요. 이런 거 다 뜯어고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직 블로그에서 투덜대는 것 이상의 힘이 없어서... (한숨)
Commented by dunkbear at 2008/05/15 11:08
초록불님 //

행과 불행이 마음가짐에 달린 문제라는 점에서는 공감합니다. 저도 사실 고등학교
때 겪은 모든 일이 결코 낭만적이거나 근사한 경험은 아니었거든요. 그래도 그때는
약간의 숨돌릴 수 있는 "여유"라도 있었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지금 10대들은 자신들이 불행한지 아닌지 조차 돌아볼 여유가 없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ㅜ.ㅜ
Commented by 바부팅이 at 2008/05/15 13:35
20대를 깐다.. 정말 10대와 20대를 까는 30대 혹은 그 이상들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20대이고 수많은 넷상의 글을 보지만 까인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습니다. 고대부터 어린 것들이 문제라는 어른들의 발상은 늘 있어왔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왜 이제야 발끈하는지..

오히려 그릇됨이 없다고 자신들을 돌아볼 줄 모르는 발상이 문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주어진 길대로 살아오다가 그것을 벗어날 수 없는 용기가 없거나 자율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서 발생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dunkbear at 2008/05/15 17:08
바부팅이님 // 글쎄요... 주어진 길조차 아닌 강요된 길만 걸어야 했던 10대들에게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조차 가지고 있을지 그저 걱정될 뿐입니다...
Commented by 바부팅이 at 2008/05/16 16:09
여유라.. 참 어렵지만 찾아보면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길이 험난할 뿐이라 여유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 문제겠죠..
사실 강요된 길이지만 그 길이 편하긴 합니다. 생각외로.. 책상머리에 앉아있기만 하면 되는걸요..
Commented by dunkbear at 2008/05/16 19:54
바부팅이님 // 네... 아무 생각 없이 따르는게 편하긴 하죠...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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