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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단편 SF소설: '그들은 왜 구덩이를 팠을까.' 생각과 잡설


얼마 전에 아서 클라크의 단편집을 읽었는데, 갑자기 '삘'을 받아서 써본 조잡한 단편입니다.

이 작품(이라고 할 것도 없지만)은 아서 클라크가 1953년에 런던 이브닝 뉴스 (London Evening News)에 처음 게재했던 단편소설인 '홍보활동 (Publicity Campaign)'에서 영감을 받아 쓴 겁니다.

SF소설이긴 하지만 풍자소설이기도 하니 그냥 한번만 읽어주세요. 길어서 지루하긴 하겠습니다만, 제 블로그 자주 드나드시는 분들이라면 꽤 친숙(?)하게 느껴지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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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디서 뭐가 잘못된 거지?’


간신히 탈출한 함장과 대원들은 모함 (母艦)의 격납고에서 턱 밑까지 올라온 숨을 겨우 들이쉬고 있었다.

피와 흙으로 범벅이 된 한 여성대원은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꺽꺽거리며 울고 있었고, 마찬가지로 피투성이가 된 다른 대원들은 차가운 갑판 바닥에 드러누워 일어날 줄 모르고 있었다.

함선에 대기하고 있던 대원들과 의료진이 급하게 달려와서 공포가 채 가시지 않은 대원들을 돕거나 응급처치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함장은 쉴 틈도 없이 함교로 달려가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 했다.

혹시라도 ‘그들’이 뒤쫓아오고 있을 지도 모르기 때문에...


***


6시간 뒤, ‘그들’이 추적하고 있지 않음을 확신한 다음에야 함장은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계속 함교에 있어야 했기 때문에 식사도 자동 물질생성 장치에서 전송한 군용식량으로 때워야 했다.

함장의 31년 경력 중에 대부분은 다른 문명과 접촉하는 임무로 채워져 있었다. 

제국은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자랑하지만, 그만큼 무모한 세력확장과 전쟁이 어떤 결과를 가져다 줄 지도 잘 알고 있을 정도로 발달한 문명이다.

전쟁보다는 외교. 
그 첨병이 바로 함장이 지휘하고 있는 행성간 조사선인 것이다. 

그러나 방금 전에 접촉한 문명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함장은 생각한다.


‘환영행사를 위해 입은 우리의 복장이었나? 걸음걸이? 아니면 인사 방식? 

'우리를 환대해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선보였던 제국의 전통춤이었나? 

'도대체 뭐가 문제였지?’


지금까지 여러 문명들과 접촉하면서 이런 일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물론 그 종족은 약간 전체주의 (全體主義)적 분위기가 느껴지긴 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그 행성의 산림과 비슷한 색의 알록달록한 무늬를 가진 옷을 입고 있었다. 

게다가 역시 같은 색상의 가방도 등에 짊어지고 있었고...

하지만 그런 종족은 얼마든지 있었다.

오히려 그런 문명일수록 일사 분란하게 지도층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가? 

접촉 전에 이루어진 그 행성의 고위관리와의 대화에서 이상한 낌새는 조금도 없었는데 말이다. 

근데 환영행사 도중에 왜 그렇게 갑자기 질서를 잃고 미친 것처럼 달려 들었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심지어 생매장까지 당할 뻔 했지!’


환영행사에 모여있던 군중들은 그녀를 보자마자 갑자기 지고 있던 가방에서 작은 접이식 삽을 꺼내 들었다.

광장 옆 잔디밭을 눈 깜짝할 사이에 파내어 그 여성대원을 구덩이에 던져놓고 흙을 덮기 시작했을 때는... 

함장은 그 생각만해도 아찔했다.


‘아니, 다시 생각하자. 처음부터 다시 짚어보자. 뭔가 어디서 잘못된 게 있을거야. 

'EGLB-311 외계어 번역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건가? 

'하지만 환영인파 앞에서 연설했을 때는 아무런 동요가 없었잖아.’


‘아니면 복장이었나? 

'하지만 다른 문명의 복식이야 자기들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걸 모를 정도로 후진적인 문명은 아닌데.’


‘그렇지 않으면 전통춤이었나? 

'지금까지 수십 개의 문명과 접촉하면서 선보였던 제국 고유의 전통춤이었다. 

'물론 접촉 중에 오해나 실수로 문제가 생긴 적은 있었지만, 춤 때문에 갈등이 야기된 적은 없는데...’


‘근데 그들의 반응은 너무도 격했단 말이야. 

'거의 이성이 마비되어 사리를 분별 못할 정도로 말이지. 흐음...’


함장은 속으로 깊은 한숨을 쉬었다. 

함교에 앉아서 아무리 생각해봐야 소용없었다. 실패한 일은 실패한 거다. 

이번 일에 대한 자세한 보고서를 작성해서 제국의 외교부에 보내야 한다. 

그러면 제국 외교부 산하 연구소에서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분석하고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줄 것이다.


이제 자신이 해야 할 일은 그 광란에서 가까스로 빠져 나왔지만, 여전히 큰 충격에 빠져있을 대원들을 살펴보고 위로하는 일이다. 보고서는 그 다음에 작성하고...


***


외계문명접촉 1차 보고서

제국력 9145년 12월 26일


접촉 대상: 알파센타우리, 제3 태양계, 5번째 행성 (M급)


접촉 결과: 실패


1) 이번 실패에 대한 모든 책임은 본관에게 있음. 

조사선의 대원들은 본관의 명령에 따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임무를 수행했고, 본관은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함.


2) 이번 접촉 실패는 그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종족민의 이성을 잃은 과도한 반응에 기인한 것으로, 그 원인을 제국 외교부 연구소에서 면밀하게 조사해야 한다고 판단됨.


3) 대원들 모두 부상당했지만, 사망자는 없었음.

3-1) 특히 여성대원 1명이 접촉대상 종족에게 산 채로 매장을 당할 뻔함. 

해당 여성대원의 귀환과 심리치료를 요청함.

3-2) <별첨.1>에 올린 그녀의 복장 일러스트를 제국 외교부 연구소에서 분석해줄 것을 요청함.
 

이번 사태와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됨.


4) 착륙선에도 행성의 거주민들이 던진 물체 (돌, 쇠붙이 등)로 선체 여러 곳이 손상되었음.

이상하게도 손상된 부위가 착륙선의 함명을 도색한 자리에 집중되어 있었음.

4-1) <별첨.2>에 손상이 심한 착륙선 부위의 사진을 올림. (파손되기 전에 촬영) 분석 요망.


5) 가능성은 희박하나, 환영행사에서 우리 측이 선보인 제국의 전통춤의 안무도 분석하기 바람. 

5-1) <별첨.3>에 춤의 안무 설명서를 올림.


6) 해당 종족의 정부는 이번 사태에 대해 직접적인 책임은 없는 것으로 보임. 

현재까지 통신접촉은 없었지만, 이는 사태를 수습하느라 본함과 접촉할 여유가 없는 것으로 추정됨.



아르민 제국 우주군 제13 함대 산하 제42 조사단

행성간 조사선 a.E.S (aLmin Empire Spaceship) 알레나이트 (Allenait) 

함장 겸 사절단 단장 카엘 그레나디어 (Kael Grenadier)




<별첨.1>


<별첨.2>



<별첨.3>





***


“똑똑.”

“누군가?”

“부함장입니다.”

“아, 들어오게.”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좀 쉬셔야죠.”

“고맙네. 보고서를 막 끝냈네. 이제 좀 한숨 자야지.”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직접 겪은 건 아니지만, 대원들 몰골을 보면...”

“그녀는 어떤가?”

“누구 말씀이십니까?”

“저기, 이름이... 아, 그렇지 오토메 대원 말이야.”

“아, 그녀는 지금 수면 중입니다. 

"어느 정도 안정은 된 것 같지만, 닥터 앰부시의 말로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합니다. 

"그녀가 겪은 일이 보통 끔찍한 게 아니라서... 

"귀환해서 심리치료를 집중적으로 받아야 할 거라고 합니다.”


함장은 한숨을 깊게 쉬었다.


“도대체 어디서 뭐가 잘못된 건지!! 이번 임무가 그녀의 첫번째였는데!!”

“.............”

“그래, 다른 일은 없나?”


"네.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부함장이 나간 후, 그제서야 함장은 더러워진 제복을 세탁장치에 넣고 음파 샤워를 한 다음, 자리에 누울 수 있었다. 

하지만 잠은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함장은 뒤적이면서 그 행성을 생각했다.


'뭐가 잘못되었지. 그 종족이 이상한 건가?'


갑자기 함장은 머리 속에 뭔가 떠올랐다.


'그래... 환영행사가 열린 그 광장... 중앙에 그 종족이 숭배하는 남신(男神)과 여신상이 있었지. 

'근데 그게... 그래, 정말 이상했어. 

'남신의 동상이야 이상할 게 없었는데, 여신의 동상은 도대체...'


함장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그 여신은 긴 생머리에 약간 진한 초록색 의상을 입고 있었다. 

아니, 그 의상의 가슴 부분만은 하얀색었다. 하지만...
 

'무슨 여신을 기다란 원형 기둥에 음각으로 새겨놓았담... 그러고 보니 원형 기둥도 아니었지.

'기둥 여기저기에 주름이 져 있었고, 가장자리는 양쪽 끝이 뾰족하게 되어 있었지. 

'남신은 그 기둥을 한 손으로 안고 있었고...

'왜 그렇게 만들었을까? 그 종족의 여성들은 그렇게 생기지도 않았는데 말이지.

'마중나온 관리가 그걸 보고 뭐라고 했었더라? 

'아, 두 신이 결혼하는 모습이라고 했었지... 

'뭐였지? 오둑 페이트 (Oduk Fate)식 결혼이라고 했던가... 아무튼 참...'


함장은 그렇게 회상하면서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

덧글

  • 위장효과 2013/12/27 22:16 #

    제목만 보고 "그야 ㅅ 짱을-저도 모자이크 처리!!!- 파묻기 위해서!!!"라고 나름 답변을 작성했는데...역쉬나!!!! -다만 ㅇ 짱일 수 있다는 걸 예측못했네요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ㄲㅈ ㅁ!!!!!!!!!!!!!!!!!!!!!!!!
  • dunkbear 2013/12/27 22:21 #

    예지력이 상당하시네요. 참고로 위장효과님도 출연하셨습니다. 잘 찾아보세용~~
  • 위장효과 2013/12/27 22:24 #

    ㅋㅋㅋㅋㅋㅋㅋ 봤다능!!!!

    "알민" 제국 조사선 "알레니트" 함장 "카엘" "그레나디어" ㅋㅋㅋㅋㅋ

    그럼 혹시 우주함대 사령관은 만슈타인 제독(실제 인물말고 삿쨩=MB갓카 가설을 제창하신 그분!) 아닙니까?????^^
  • dunkbear 2013/12/27 22:28 #

    어익후, 위장효과님은 거리에 돗자리 깔아도 되시겠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Grenadier 2013/12/27 22:58 #

    앜ㅋㅋㅋㅋ 저도 출현시킬줄이야. 영광입니닼ㅋㅋㅋ
  • dunkbear 2013/12/27 23:04 #

    Grenadier님 // ㅎㅎㅎㅎㅎㅎㅎㅎ
  • Ladcin 2013/12/27 22:15 #

    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dunkbear 2013/12/27 22:21 #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 StarSeeker 2013/12/27 22:36 #

    ㅋㅋㅋㅋㅋ
  • dunkbear 2013/12/27 22:41 #

    ㅎㅎㅎㅎㅎㅎㅎㅎ
  • Grenadier 2013/12/27 22:58 #

    그 종족이름은 슴친족이군요
  • dunkbear 2013/12/27 23:04 #

    그렇습니다!!! 또는 누친족으로 불리기도 하죠. ㅎㅎㅎ
  • Grenadier 2013/12/27 23:06 #

    과연 이 글을 누친님이 보신다면?!
  • dunkbear 2013/12/27 23:31 #

    멘붕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ㅋㅋㅌㅌ
  • aLmin 2013/12/28 00:11 #

    "짐이 곧 국가니라."
  • 위장효과 2013/12/28 06:43 #

    으악!!!! Vive L' Empereur!!!!!!!!
  • dunkbear 2013/12/28 07:20 #

    황제 폐하 납시요~~~
  • 바탕소리 2013/12/28 12:50 #

    무슨 말이지? 했는데 1번 짤방의 아가씨를 보고서야 이해했습니다. ㅋㅋㅋ
  • dunkbear 2013/12/28 12:55 #

    놓치실 수 없었을 겁니다. ㅎㅎㅎ
  • 골든 리트리버 2013/12/28 22:52 #

    오토멬ㅋㅋㅋㅋ앜ㅋㅋㅋㅋㅋㅋ
  • 바탕소리 2013/12/28 23:16 #

    누친님의 예상 답변: “이 사람들이 지금 뭐라는 거야!?”
  • dunkbear 2013/12/29 09:13 #

    골든 리트리버님 // 소설 속에서도 고통받는 오토메짜응... (ㅠ.ㅠ)

    이게 다 누친님 때문입니다!!!!

    바탕소리님 // 누친님의 멘붕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ㄲㄲㄲㄲ
  • 가릉빈가 2013/12/29 02:39 #

    버틸수가없다!
  • dunkbear 2013/12/29 09:05 #

    우헤헤헤헤헤헿~~~
  • 누군가의친구 2013/12/30 02:21 #

    이, 이거 뭡니까?!... 제 HP는 0이라고요!!!
  • Grenadier 2013/12/30 21:11 #

    system : 누군가의 친구님은(가) 혼란에 빠졌다!!!
  • dunkbear 2013/12/30 22:03 #

    누친님의 반응이 약하네요. 역시 저런 졸작으로는 멘붕은 어림없는 것 같습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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