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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우리 곁을 떠난 두명의 콘서트마스터 영상과 음악

좀 늦었습니다만, 지난 10월 9일은 두명의 콘서트마스터가 별세한 날이었습니다. 그 중 한명은 클래
식 음악을 접하셨다면 모르기가 힘들, 베를린 필하모닉 (Berliner Philharmoniker)의 콘서트마스터였던
미셸 슈발베 (Michel Schwalbé: 1919-2012) 입니다.


ⓒ unknown

슈발베는 1919년에 폴란드에서 태어나 8살의 나이에 바르샤바에서 모리시 프렝켈 (Maurycy Frenkel)
에게서 처음으로 바이올린을 사사받습니다. 그리고 1933년에는 파리 음악원 (Paris Conservatoire)에
서 에네스쿠 (Georges Enescu), 부셰리 (Jules Boucherit) 및 몽퇴 (Pierre Monteux)에게 배웁니다.

1957년에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Herbert von Karajan)이 베를린 필하모닉의 콘서트마스터 자
리를 슈발베에게 제안했다는 사실은 - 특히 나치 독일시절의 카라얀의 위치를 고려했을 때 - 슈발베
의 실력을 인정한다는 매우 가치있는 제스처로 보였음이 틀림없었을 거라고 합니다.

물론 폴란드 태생의 유대인인 슈발베에게는 이 제안이 처음에는 어려웠겠지만요.

그러나 에네스쿠의 제자이자 사중주단의 리더, 그리고 에르네스트 앙세르메 (Ernest Ansermet)가 이
끌던 스위스 로망드 악단 (Orchestre de la Suisse Romande)의 콘서트마스터였던 그는 베를린 필에
큰 기여를 하게 될 뿐만 아니라 독주에서도 매우 능숙하다는 것을 증명하게 됩니다.


ⓒ LEBRECHT

슈발베가 베를린 필의 콘서트마스터로 남긴 녹음 중에는 카라얀의 지휘로 함께 한 비발디의 '사계',
R. 쉬트라우스의 교향시인 '영웅의 생애 (DG)' 등이 있고, 1986년까지 그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콘
서트마스터로 남아있었습니다.

슈발베는 베를린에 위치한 한스 아이슬러 음악 아카데미 (Academy of Music Hanns Eisler)에서 교
수로 가르쳤고, 은퇴한 이후에도 젊은 바이올린 연주자들의 스승 및 조언자로서 바쁜 나날을 보냈
다고 합니다.

그는 모범적인 콘서트마스터였으며, 연주 기술도 확실했고, 매혹적이면서도 적절하면서 효과적인
음색으로 첫 손가락에 꼽히는 일류 바이올린 연주자였습니다.


ⓒ Blouin Artinfo

슈발베와 같은 날에 별세했지만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콘서트마스터는 바로 테오 올로프 (Theo
Olof: 1924-2012) 입니다. 네덜란드 출신의 올로프는 헤이그 필하모닉의 공동 수석주자였고, 후일
로열 콘서트헤보우 악단 (Royal Concertgebouw Orchestra)의 콘서트마스터로 활동합니다.

1924년 독일의 본 (Bonn)에서 출생한 테오 올로프는 유대인으로 1933년에 부모와 함께 나치의 마수
를 피해서 네덜란드에 정착하게 됩니다. (안네 프랑크 일가와 비슷한 경우네요.) 거기서 올로프는 오
스카 백 (Oskar Back)의 사사를 받습니다.

그리고 1935년에는 브루노 발터 (Bruno Walter)의 지휘로 로열 콘서트헤보우 악단에서 독주자로 데
뷔하게 됩니다. 1951년에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Queen Elisabeth Competition)에서 4위를 기록했
는데, 올로프는 콩쿠르 역사상 최종 예선에 든 유일한 네덜란드 바이올린 연주자라고 하네요.


ⓒ Reuters

그리고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수상한 같은 해, 올로프는 허만 크레버스 (Herman Krebbers)와 함
께 헤이그 필하모닉의 공동 수석주자로 임명됩니다. 크레버스도 올로프처럼 오스카 백의 지도를 받
은 연주자입니다.

1974년에 올로프는 로열 콘서트헤보우 악단의 콘서트마스터로 취임해서 1985년까지 그 자리를 지
켰고, 바이올린 연주자로서는 1994년에 은퇴하게 됩니다. 올로프는 콘서트마스터로서의 삶을 즐겼
지만, 슈발베처럼 뛰어난 솔로 주자였고 솔로와 콘서트마스터 활동을 병행했다고 합니다.

올로프는 활동하는 동안 오토 클렘페러 (Otto Klemperer)의 필하모니아 악단 (Philharmonia Orche-
stra), 유진 오먼디 (Eugene Ormandy)의 필라델피아 악단 (Philadelphia Orchestra) 등의 여러 콘서
트마스터 자리를 제안받았었지만, 네덜란드에 머무는 것을 선택했다고 하네요.


ⓒ unknown

올로프에게는 그의 음악 파트너인 크레버스와 함께 몇몇 작품이 헌정되었고, 올로프 자신에게도
작품이 헌정되었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브루노 마데르나 (Bruno Maderna)가 1969년에 작곡한 바
이올린 협주곡이라고 합니다.

1970년대에 라벨의 작품인 '치간느 (Tzigane)'의 악보에서 강조된 'piano luthéal'의 행방을 궁금하
게 여긴 올로프는 전세계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piano luthéal'을 다시 찾아내어 복원하는 중요한
연구를 수행했다고 합니다.

이 'piano luthéal'은 피아노를 침발롬 (cimbalom: 헝가리의 타현악기), 류트 또는 덜시머 (dulcimer)
처럼 소리나도록 만드는 도구입니다. 이후 올로프는 라벨의 '치간느'를 다니엘 웨인베르그 (Daniel
Wayenberg)와 함께 EMI에서 녹음하게 되죠.


ⓒ Satyr

콘서트마스터 외에도, 올로프는 교사이자 방송인이었다고 합니다. 올로프는 1982년까지 헤이그의
왕립 음악원 (Royal Conservatorium)에서 바이올린 수석교수였고, 1975년에는 네덜란드의 클래식
라디오 방송국인 Hilversum 4를 세운 창립 회원 중 한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올로프가 로열 콘서트헤보우 악단의 콘서트마스터로 취임했을 때는 버나드 하이팅크 (Bernard H-
aitink)가 이 악단의 상임지휘자로 활동하던 시절로, 지금처럼 세계 1위의 악단으로 불리지는 않았
지만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때이기도 합니다.

올로프는 슈발베처럼 자신이 몸담고 있던 악단을 최고로 만든 콘서트마스터였던 것이죠. 같은 날
에 별세한 이 두 거장의 명복을 빕니다...


ⓒ radio4


설명 출처 - 그라모폰 (링크 1, 링크 2) / 사진 출처 - 구글 검색 (링크)



덧글

  • 가릉빈가 2012/10/27 23:10 #

    시대의 별이 졌지요
  • dunkbear 2012/10/28 20:32 #

    그렇습니다....
  • 지나가는 저격수 2012/10/27 23:28 #

    위대한 별이지고 새로운 별이 뜨고,

    그것이 바로 자연의 순리.

    진 별을 애도해야하지만, 뜨는 별을 기대해 봅니다.
  • dunkbear 2012/10/28 20:32 #

    다만 뜨는 별은 죽어가는 클래식 음반 시장을 바라봐야 하니... (ㅠ.ㅠ)
  • 漁夫 2012/10/28 00:17 #

    명복을 빕니다.

    그런데 이들이 살던 시대만큼 음악 녹음 산업이 다시 번창할 수 있을까 의심스럽습니다.
  • dunkbear 2012/10/28 20:33 #

    삼가 명복을 빕니다.

    저도 부정적입니다. 매체의 변화는 둘째쳐도 클래식 시장이 너무 죽은 것 같아서... (ㅠ.ㅠ)
  • 셔먼 2012/10/28 00:49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dunkbear 2012/10/28 20:33 #

    삼가 명복을 빕니다...
  • wheat 2012/10/28 11:03 #

    그들은 갔지만, 그들이 남긴 예술은 영원할 것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dunkbear 2012/10/28 20:33 #

    그렇습니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
  • 만슈타인 2012/10/28 13:16 #

    시대의 음악을 라이브로 다시 들을 수 없는 게 안타깝지만 레코드와 후학들이 크길 바랍니다.
  • dunkbear 2012/10/28 20:33 #

    저도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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