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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동란] 히로시 H. 미야무라 미 육군 하사 군사와 컴퓨터

히로시 "허쉬" 미야무라 (Hiroshi "Hershey" Miyamura)는 1925년 10월 6일, 미 뉴멕시코주의 갤럽
(Gallup)에서 태어난 일본계 미국인입니다. 그는 2차 대전이 막바지에 들어선 1944년 미 육군에 징
집되어, 일본계 장병들로 구성된 제442 보병연대 (442nd Infantry Regiment)에 잠시 근무했습니다.



[히로시 "허쉬" 미야무라 하사의 사진. ⓒ National Archives]

자신들의 충성을 증명하기 위해 많은 일본계 병사들이 싸운 이 부대는 21명의 명예의 훈장 (Medal
of Honor) 수상자를 포함해서 미군 역사상 가장 많은 훈장을 수여받은 기록을 가지게 되었지만, 정
작 미야무라가 본인은 전투에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이탈리아에 도착하기 5일 전에 전쟁이 끝났기 때문이죠. 일본이 항복한 이후, 미 육군에서 제
대한 미야무라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와 자동차 정비사 일자리를 기다리면서 미 육군 예비군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미 육군 예비군 제대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1948년 6월에 미야무라는 테리 츠시모리 (Terry Tsuc-
himori)와 결혼하게 됩니다. 이후 미 육군 예비군에 재입대한 미야무라는 6.25가 발발하자 현역으로
불려나가게 됩니다.



[젊은 시절의 미야무라씨가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 ⓒ unknown]

기관총 분대에 속해 있던 미야무라는 1950년 11월 26일에 중공군이 압록강을 넘어오는 모습을 쌍안
경을 통해 직접 목격했고 그와 그의 분대는 간신히 흥남에서 철수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그가
속한 분대는 전장 이곳 저곳을 전전하면서 미 보병부대들을 지원하는 임무를 맡았다고 합니다.

서울을 탈환하기 위한 연합군의 작전에 7개월 동안 계속 참여한 미야무라와 그의 분대는 1951년 4월
24일부터 25일 동안 제3 보병사단 (3rd Infantry Division), 제7 보병연대 (7th Infantry Regiment) 산
하에서 1차 춘계대공세의 일환으로 임진강 변에서 몰려오는 중공군과 맞서게 되었습니다.

10여명의 기관총 사수와 5명의 소총병으로 구성되어 있었던 미야무라 상병의 분대는 임진강 인근의
언덕에서 방어선을 치고 물밀듯이 몰려오는 중공군과 대적했습니다. 수시간 동안 끝없이 밀려오는
중공군에게 밀리면서, 미야무라 상병의 분대는 살아남기 위해 분투했습니다.



[1951년 4월 24일, 미야무라 상병이 적군과 홀로 분투하는 모습을 묘사한 기록화. ⓒ unknown]

그 와중에 측면으로 들어오는 적군들을 알아챈 미야무라 상병은 주저없이 참호에서 뛰쳐나와 총검으
로 10여명 이상의 중공군 병사들을 물리치면서 그의 분대에게 대응할 시간을 벌어줬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분대로 돌아온 미야무라 상병은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철수를 지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또다른 중공군의 부대가 갑자기 몰려오자, 미야무라 상병은 30 구경 기관총을 가지고 총
탄이 떨어질 때까지 효과적으로 적들을 제압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분대는 거의 몰살당했기 때문에,
남아있는 병사들에게 안전하게 철수하도록 명령합니다.

그리고 미야무라 상병 자신은 적이 탈취 못하도록 기관총을 분해하기 시작했는데, 또다시 중공군들
이 밀고오자, 총검으로 적 병사들을 물리치면서 두번째 기관총 진지로 가서 남아있던 미군 병사들에
게 후퇴할 것을 명령하고 자신은 남아서 기관총으로 엄호사격을 했다고 합니다.



[1953년 8월, 포로수용소에서 귀환한 미야무라 상병이 오스본 소장으로부터 명예의 훈장 수여자가
되었다며 축하받는 모습. ⓒ unknown]


그 때가 미야무라 상병이 그의 분대원들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고, 그 분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답니다.
쏟아지는 중공군의 물결은 단 한명의 기관총 사수에 의해 막혔지만, 더 이상 버틸 수 없자, 미야무라
상병은 은폐된 벙커에 피신했다고 합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쏜 기관총 앞에는 50명 이상의 중공군 시체들이 널려있었다고 하네요. 야간을 틈타
적군과 마주치면 백병전으로 제압하면서, 미야무라 상병은 수천명의 중공군이 둘러싼 언덕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애썼지만, 25일 새벽 즈음에는 얼어버린 시체인 척하면서 적을 속여야만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나가던 수백명의 중공군 중에 한 중공군 장교의 날카로운 눈을 피하지 못한 미야무라 상병
은 끝내 포로가 되고 말았다고 합니다. 이후 28개월 동안 그는 포로수용소에서 지냈고, 따라서 바깥
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도 모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미야무라 하사가 아이젠하워 대통령으로부터 명예의 훈장을 수여받고 악수하는 모습. ⓒ DOD]

포로수용소에서 미야무라 상병은 그의 고향을 그리워하지 않았을 때에는 그의 분대원들이 무사히
탈출했을 지 걱정했다고 합니다. 그의 분대원들 상당수가 무사히 귀환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미야
무라 상병은 분대원들 대부분이 부상당했거나 전사했을 것으로 믿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한때 미야무라 상병은 많은 분대원들을 잃었기 때문에 군사법정에 불려나갈 것으로 믿기까
지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1953년 8월 23일 그가 판문점 인근의 자유의 마을을 통해 귀환했을 때 미
야무라 '하사'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그가 명예의 훈장을 수여받게 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중공군이 미야무라 하사
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던 것처럼, 미군도 그가 명예의 훈장을 수여받게된 
사실을 최고기밀 (Top Secret)로 감추고 있었던 것입니다. 랠프 오스본 (Ralph Osborne) 준장은
이 사실이 중공군 귀에 들어가면 미야무라 본인에게 가해질 일을 우려했다고 합니다.



[명예의 훈장을 수여받은 직후, 가족과 함께 포즈를 취한 미야무라 하사의 모습. ⓒ unknown]

오스본 준장은 만약 중공군들이 미야무라 하사가 포로가 되기 전에 상당한 수의 아군을 사살했다
는 걸 알게된다면, 이들이 그에게 보복을 가했을 지도 몰랐으며, 그가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을 지
도 몰랐다고 미야무라 본인과 기자들에게 설명했다고 합니다.

이후 미야무라 병장은 미국으로 송환되어 미 육군에서 명예제대했고, 1953년 10월에는 백악관에
서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Dwight D. Eisenhower)로부터 직접 명예의 훈장을 수여받았습니다.

2차 대전 당시 같은 지역에 살고 있던 일본계 주민들 800명이 수용소로 끌려가는 걸 막아내는 데
성공했던 뉴멕시코의 한 지방 도시를 고향으로 둔 미야무라 병장에게 이 명예는 당연한 것이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고향인 갤럽에서 카퍼레이드로 환영을 받고 있는 미야무라 하사의 모습. ⓒ unknown]

이후 미야무라씨는 그의 고향인 갤럽에서 자동차 정비사이자 정비소 사장'님'으로 살면서 그의 아
내인 테리와 함께 3명의 자녀를 낳아서 키웠고, 그 자녀들로부터 나온 4명의 손자손녀 중 한명인
마리사 (Marisa)는 미 공군 장교로 복무 중이라고 합니다.

2007년 11월 12일, 갤럽에 두번째 고등학교를 세우기 위해 갤럽 중학교 (Gallup Junior High sc-
hool)를 고등학교로 만들면서, 이 학교의 이름을 명예의 훈장 수여자를 기리기 위해 미야무라 고
등학교 (Miyamura High School)로 명명했다고 합니다.

미야무라씨는 6.25 동란 25주년이던 1975년에, 그리고 2000년에 각각 우리나라를 방문했었다고
합니다. 두번째 방문에서는 그가 명예의 훈장을 수여받게 된 전투 지역도 들렀다고 하네요.



[2010년 5월, 자신의 손녀딸인 마리사 미야무라 미 공군소위가 근무하는 일리노이주의 스코트
공군기지 (Scott AFB)를 방문한 미야무라 부부의 모습. ⓒ U.S. Air Force]


미야무라 하사를 포함해서 6.25 동란 중에 명예의 훈장을 수여받은 이들은 모두 135명입니다. 그
중에는 이 전쟁에서 포로로 잡힌 미군 중 가장 높은 계급인 윌리엄 F. 딘 (William F. Dean) 제24
사단장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6.25 동란 62주년을 맞이해서 올린 포스팅이었습니다. 일본계 미국인이라서 거부감을 느끼실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두드러져 보여서 선택한 인물이었습니다. 일본계 미국인이지
만 우리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운 분인만큼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6.25 동란 중에 우리나라를 지키기위해 스러져간 많은 국군 및 연합군 장병들에게도 감사해
야 할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의 관계와는 별도로, 어딘 지도 모르는 머나먼 이국의
땅에서 싸우고 간 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은 앞으로도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2000년에 우리나라를 방문한 미야무라씨가 6.25 동란 중에 겪은 자신의 경험을 회고하는 모습.
ⓒ unknown]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링크) / Home of Heroes (링크)



덧글

  • 제너럴마스터 2012/06/25 21:12 #

    일본계 부대 하니까 김영옥 대령 생각나네요. 한국전쟁때도 김대령이 일본계 이끌었었나요?
  • dunkbear 2012/06/25 21:21 #

    넵. 위에서 언급된 일본계 미국인들로 구성된 제442 연대 산하 제100대대를 이끌었다고 합니다.
  • Bluegazer 2012/06/25 21:31 #

    100 독립보병대대는 2차대전 종전후 예비역으로 전환되어 2004년까지 단대호만 유지되었습니다. 이후 딱히 일본인 2세로만 구성된 부대는 없었죠. 김대령님이 한국전 당시 현역 복귀해서(사업으로 꽤 재미를 보던 중에 조국에 전쟁 터졌다고 시원하게 때려치우시고 날아오셨다고...) 복무한 31연대도 딱히 유색인종 부대는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김대령님이 나중에 유색인종 최초로 대대장 자리에 오르죠.
  • dunkbear 2012/06/25 21:45 #

    Bluegazer님 //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
  • 信念의鳥人 2012/06/25 21:29 #

    김영옥 대령님은 한국전에서도 혁혁한 공을 세우셨죠...

    당시 442연대에는 김영옥대령님 말고도 극소수의 한국계 장병들이 복무하셨다고 하지만,
    어떤분들이 복무하셨는지는 알길이 없더군요 -_-
  • dunkbear 2012/06/25 21:46 #

    그렇군요. 다른 분들도 계셨는 줄은 몰랐습니다.... (ㅠ.ㅠ)
  • 정호찬 2012/06/25 21:33 #

    뻘플이지만 역시 하프 미녀!
  • dunkbear 2012/06/25 21:46 #

    아니... 미녀에 눈이 가시면 곤란한데... (^^;;)
  • KittyHawk 2012/06/25 21:36 #

    역시 현실은 픽션을 능가하기도 한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군요.
  • dunkbear 2012/06/25 21:47 #

    그런 경우 많더군요. 영화배우로도 유명한 2차 대전
    영웅인 오디 머피의 활약상만 해도 액션영화 뺨친다는...
  • 콜드 2012/06/25 21:41 #

    대단하신 분이시네요.

    그러고보니 얼마전에 밥먹다가 옆자리에 80 조금 넘으신 할아버지가 있었는데 그 분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그 분도 6.25 참전용사였던 걸 알고나서 얼마나 감회가 새로웠던지 흑흑 ㅠㅠ
  • dunkbear 2012/06/25 21:47 #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그 시절을 살아남은 분들 대부분은 대단한 분들 아닌가 합니다.
  • 迫擊砲 獬玄 2012/06/25 22:11 #

    올해초 별세하신 할아버지도 참전용사이지만 무용담을 들어보면..... 전쟁끝나고 동네 친구들에게 무지막지하게 갈굼당했단다...

    왜냐하면 할아버지는 제주도 육군훈련소애서 훈장 받을 정도로 빡세게 신병들을 전쟁중에 훈련시켰거든.....

    픽션은 현실을 못넘는다는걸 이때 알게 되었지요...
  • dunkbear 2012/06/25 22:13 #

    제대로 임무 수행하셨지만 뒤끝이 안좋으셨군요... (ㅠ.ㅠ)
  • 폴라리스 2012/06/25 22:14 #

    휴.....비슷한 나이대에 어떤 일본인 할아버지들은 제가 어릴적에 살던 성산 일출봉에 올라선 일장기를 꺼내 반자이를 외쳤드랬죠.
    알고보니 성산 일출봉에 파여진 방공포대 공사를 담당하던 주둔군 출신이라나요.
    역시 사람은 어떤 교육을 받아야 하는지 절감하는 포스팅이었습니다.
  • dunkbear 2012/06/25 22:18 #

    그 할아버지들도 나이를 그 '구멍'으로 드셨군요... 쩝.
  • Ladcin 2012/06/25 22:34 #

    무쌍 찍으셨네요. 흠좀무
  • dunkbear 2012/06/26 14:45 #

    저 분만 아니라 다른 130여명의 영웅들도 그랬을 겁니다.
  • 셔먼 2012/06/25 22:39 #

    비록 철천지 원수의 혈통을 지니고 있지만, 그분이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앞장서 싸우신 공은 높이 살 만합니다.
  • dunkbear 2012/06/26 14:46 #

    그렇습니다. 그 공은 높이 사야죠.
  • 瑞菜 2012/06/25 23:00 #

    그러고보니 신의 영역이라는 마지막 4할타자 테드 윌리암스도 6.25때 코르세어 조종사로 재소집 되었다가
    날개 반쪽 날아가고도 살아돌아와 복귀날 경기에서 홈런을 쳐서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것을 증명했지요.
    그리고 재소집 직전 마지막 타석에서 홈런을 치고 인터뷰에 "이번에 가서 살아돌아올 지 모른다"고 했었는데..
    현실은 이미 픽션을 능가했습네다...
  • dunkbear 2012/06/26 14:48 #

    컥.... 테드 윌리암스는 야구장에서나 전장에서나 레전드였군요. ㅎㄷㄷㄷㄷ;;;
  • Eraser 2012/06/25 23:42 #

    존 바실론 성님의 기관총무쌍이 다른곳에서 재현되다니...-.,-
  • dunkbear 2012/06/26 14:48 #

    기관총이라는 무기의 특성 때문인지 여러 영웅이 기관총무쌍을 연출했던 걸로 압니다. ㅎㅎㅎ
  • ttttt 2012/06/26 01:28 #

    혹시 해꼬지당할까봐 배려해주는 시스템 부럽네요.
  • dunkbear 2012/06/26 14:49 #

    2차 대전을 치른 경험의 산물이 아닌가 합니다.
  • 2012/06/26 07:29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unkbear 2012/06/26 14:50 #

    아, 그런가요... 명예의 훈장이나 명예훈장으로들 번역이 되어 있어서... (ㅠ.ㅠ)
  • 위장효과 2012/06/26 07:30 #

    김영옥 대령님은 그때 대위로 참전해서 군사고문단소속으로도 복무했다고 들었습니다. 일선 부대 지휘관으로도 활약하셨지만요.
  • dunkbear 2012/06/26 14:50 #

    그러셨군요. 다방면으로 활약하신 분입니다...
  • 가릉빈가 2012/06/26 08:25 #

    역전의 용사군요 대단합니다
  • dunkbear 2012/06/26 14:50 #

    대단한 분이죠.
  • 세피아 2012/06/26 09:23 #

    역전의 용사군요. 대단합니다...

    근데 하필이면 일본계,,,,,,,,,,
  • dunkbear 2012/06/26 14:51 #

    아쉽지만요. 그래도 저 분의 공로는 기려야겠죠.
  • 디쟈너훈 2012/06/26 11:52 #

    마리사 짜응!
    반자이!!!!!!!!!!(응?)
  • dunkbear 2012/06/26 14:51 #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ㅠ.ㅠ)
  • 2012/06/26 19:23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unkbear 2012/06/26 21:13 #

    "만츄리언 캔디데이트"라는 영화가 생각나는군요... 실사판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씁쓸하네요...
  • 누군가의친구 2012/06/27 02:40 #

    일반인으로써는 상상도 못할 활약상이군요.
  • dunkbear 2012/06/27 11:02 #

    그러게 말입니다. 대단한 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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